[삶의 향기] 싸이의 '3가지 살'과 '3재'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사 전 그는 방송사 최종 면접에서 몇 차례 낙오한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론 한스러운 기억이겠지만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지망생들에겐 부러운 일에 속한다. 거기까지 ‘여러’ 번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실화의 주인공은 마침 친분 있던 청년이었다. 이제부터 ‘그’는 목격자가 아니라 당사자다. 그는 추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모자까지 눌러쓴 채 방송사 임원면접 장소에 나타났다. 개그맨 시험? 아니었다. ‘용감한 녀석’의 도박에 가까운 도전은 과연 성공했을까. 순서가 오자 그는 ‘연습’한 대로 액션에 들어갔다. 마치 벽을 타듯이 의자 위를 훌쩍 넘어서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당혹한 건 오히려 임원진.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는 예능PD가 되겠습니다. 각오를 확실히 보여 드리기 위해 저는 오늘 도둑의 심정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그는 합격했을까. 모험은 적중했다. 물론 그 튀는 행동 하나로 붙었다고 예단하긴 어렵다. 모험이 개인기라면 모범은 기본기다. 개성적인 자기소개서와 우수한 필기시험 성적, 이전의 중간간부 면접기록이 뒷받침됐을 것이다. “죽기 살기로 했어요. 졌어요. 죽기로 했어요. 이겼어요. 그게 답입니다.”라고 말하던 유도 김재범 선수의 표정이 오버랩된다.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대중의 눈과 귀, 마음은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쏠렸다. 하지만 스포츠 성수기에도 대한민국 관객을 사로잡은 별미의 문화상품은 있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과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 1000명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버거운데 ‘도둑들’은 1000만 명의 발길을 극장으로 내몰았다. 동네에서 주목받기도 수월치 않은데 멀리 외국 사람들까지 즐겁게 따라 하게 만든 싸이의 가무는 대단하고 대담했다. 한마디로 최 감독이나 싸이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도둑들’이다. 그들은 보석이 아니라 마음을 훔칠 줄 안다. 실상 평론하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소수이며 검열하려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은 극소수다. 재미를 창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박수와 포상금을 아까워할 이유가 없다. 싸이를 다시 본다. 일찍이 그에게는 3가지 살이 있었다. 익살, 넉살, 그리고 뱃살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에겐 3재가 보인다. 재주, 재미, 그리고 재수다. 항목별로 나누자면 음악의 재주, 예능의 재미, 인생의 재수다. 싸이의 음악과 춤은 이른바 세대공감형이다. 최근 열린 싸이콘서트의 부제는 ‘썸머스탠드 훨씬 더(the) 흠뻑쇼’였는데 3만 관중이 일사불란하게 말춤을 추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무대 위의 싸이는 약간 살찐 로빈 후드였다. 지루함을 불사르는 예능판 의적. “내 공연은 10대부터 50대까지 함께 즐긴다”는 싸이의 호언이 너스레는 아니었다. 그가 낳은 시상과 악상은 교감을 지나 공감을 넘어 일체감을 준다. 바다 건너 열 군데서나 취재하러 왔다. 오락시간에 같이 말 타고 노는데 무슨 근심이 있으랴. 그들은 날 새는 줄 모르고 오직 즐길 뿐이다. 미래의 궁상 따위는 오늘 출입금지다. “여러분이 행복해하는 걸 보니 나도 행복하다.” 무대 위아래가 두루 흐뭇한데 A급, B급 가릴 게 무언가. 관객에 대한 사랑은 에티켓. “저는 웃기더라도 저희 관객들은 멋지다는 걸 보여주세요.” 시장에 가면 듣는다. “저희도 남는 게 있어야죠.” 남는 게 없어도 괜찮은 게 싸이의 공연장이다. 아니 남는 게 없어야 한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그걸로 족하다. 살다 보면 따분한 자리가 좀 많은가. 지겨움으로 우리를 얽어매는 그들이야말로 반성해야 할 시간의 도둑들이다. 싸이는 재수도 좋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그의 뮤직비디오가 재미에 목마른 세계인들에게 생수처럼 배달되었다. 그 전에 K팝이라 하여 아이돌들이 길을 닦아둔 효과도 보았다. 이제 물건만 좋다면 시장으로 가는 길은 뻥 뚫려 있다. 문 닫기 전에 한 가지. 그는 희대의 수난을 겪었다. 대마초 때문에 경찰서도 갔고 희한하게 군번도 두 개다. 재판까지 받고 훈련소에 두 번 입소하는 기록도 보유했다. 지금 그는 어떠한가. 고난의 기억조차 유머의 소재로 써먹는 여유를 보인다. 최고의 복은 전화위복임을 싸이는 입증했다.